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평양 전쟁(남아메리카) (문단 편집) == 전개 == 볼리비아는 별다른 해군력이 없었기 때문에 [[페루 해군]]이 칠레와 해전을 벌였는데, 이 지역은 사막과 산맥으로 이루어져 도로가 적어서 육상교통이 지극히 불편했으므로, 주요 거점은 주로 해안 가까이에 있었고 따라서 제해권이 있어야 지상군에게 원활히 보급을 할 수 있었다. [[장갑함]]을 중심으로 전력을 강화해온 칠레 해군에 비해 함선 규모도 작고 수가 딸리는 페루 해군은 안가모스(Angamos) 해전(1879. 10. 8)에서 참패, 해군 사령관 [[미겔 그라우]](Miguel Grau) 제독이 전사하고 기함마저 뺏겨 [[제해권]]을 잃었다. 이로써 칠레가 승기를 잡았다. 제해권을 장악한 칠레군은 본격적으로 북진을 개시했다. 볼리비아-페루 동맹군은 칠레군과의 연이은 지상전에서 모조리 패배했다. 이에 칠레군은 이듬해인 1880년에 안토파가스타 주 전역은 물론 페루의 타라파카(Tarapacá)와 아리카(Arica) 두 주들을 모두 함락시켰고, [[볼리비아군]]은 [[안데스 산맥]] 너머 본토로 쫓겨나며 사실상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럼에도 페루가 항복할 조짐이 없자, 칠레는 지상군을 긁어모아 페루 본토를 침공했다. [[1881년]] [[1월 15일]], 페루는 수도 [[리마]]로 가는 길목이자 최후방어선인 미라플로레스(Miraflores)에 패잔병과 예비군, 갓 징집한 신병에 용병까지 긁어모아 약 1만 명을 배치해 결사항전에 나섰으나 칠레군에게 끝내 패배하여 3천여명의 병사를 잃고 나머지는 와해되었다. 뒤이어 [[1월 17일]] 수도 리마가 결국 칠레군의 손에 함락되었고, 뒤이어 페루 해군마저 잔존 함정이 칠레 해군에 모조리 나포당해 항전불가상태에 빠지면서 전쟁은 사실상 끝이 났다. 그러나 페루군은 각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저항을 계속했고, 볼리비아도 전투를 멈추지 않아 산발적인 교전이 이후 2년여간 이어졌다. 물론 전투가 지속될수록 페루와 볼리비아가 불리해졌고, 끝내 1883년 교전당사국들은 종전에 합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